2013년 6월 16일 일요일

헤리오도루스 (Heliodorus)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 토마스철학학교 소사전


헤리오도루스 (Heliodorus) : 헤리오도루스는 5세기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헤르미아스(Hermias)와 에데시아(Aedesia)라는 두 부부 철학자의 아들이며, 동시에 철학자인 암모니우스의 형제이다. 그의 아버지인 헤르미아스는 헤리오도루스가 어려서 죽는다. 그의 어머니가 홀로 그와 그의 형제를 양육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성장한 그는 이후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로 이주하며, 그곳에서 그는 대표적인 신플라톤주의자인 프로클로스(Proclos)의 아래에서 철학을 익힌다. 아테네 생활 이후 그와 그의 형제 암모니우스는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와 암모니우스는 철학을 가르친다. 이곳에서 그에게 철학을 배운 이 가운데 대표적인 신플라톤주의자인 다마스키우스(Damascius)가 있다.

토마스철학학교 철학 소사전 

에데시아 (그리스말 : Αἰδεσία) 여성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소사전


에데시아 (그리스말 : Αδεσία) : 에데시아는 신플라톤주의 학파에 속하는 여성 철학자이다. 그녀는 5세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살았다. 그녀는 시리아누스(Syrianus)의 친척이며,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내이다. 그녀의 남편인 헤르미아스의 사망 이후 그녀는 그녀의 자녀들인 암모니우스(Ammonius)와 헤리오도루스(Heliodorus)의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녀의 자녀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갔으며, 그녀는 아테데의 철학자들에 의하여 탁월한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 위대한 아테네의 철학자들 가운데는 프로클로스(Proclos)도 있었다. 그녀가 매우 어렸을 때, 그는 시리아누스에 의하여 프로클로스와 약혼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장례식의 조사(弔辭)는 어린 다마스키우스(Damascius)에 의하여 공표되었다.

토마스철학학교 철학 소사전 

2013년 6월 4일 화요일

어느 노점상의 책 이야기 1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과의 대화를 통하여 들은 것은... 다음과 같다.

어느 노점상의 책 이야기 1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과의 대화를 통하여 들은 것은... 다음과 같다.



이재호씨가 적은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이란 책이 있다. 내가 경대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읽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경주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주라고 하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곳... 혹은 박물관과 불국사 정도만을 생각했지만, 경주는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이 책은 삼국유사라는 타임머신을 통하여 지금의 경주를 걸으며 맘은 과거 서라벌을 향하게 만든다. 음... 이 책은 나에게 시간을 여행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후 나의 가족이 함께 한 인문여행의 첫 모티브가 바로 이 책 한권이었다. 

과거 나는 그냥 책으로 고민하고 책 속에서 사고하며 논문으로 세상을 대화하려고 했다. 그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인문학을 몸으로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해인사를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에 맘을 태우고 듣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 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실재로 이 책을 읽고, 나는 아들과 경주로 가서 불국사, 첨성대 등을 다녔다. 첨성대를 보는데... 갑자기 지금 21세기... 그저 기념품 같은 석조물이 아닌 신라 시대 살아있는 첨성대를 지나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아들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젠 느낀다.

삼국유사의 장면을 찾아 경주를 돌아다니는 이 책의 방식에 따라서 경주를 다닐 시간은 아직 없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그냥 숲을 찾아서 몸을 쉬는 휴식도 좋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한 곳에 작지만 이쁜 과거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타임머신들이 있다. 예를 들어, 동화사와 운문사 그리고 하회마을에 그냥 눈으로 보기 위해 간다면, 그리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맘으로 동화사를 미리 알아부고 운문사와 하회마을을 미리 알아보고 간다면, 눈으로 보는 과거의 건물 몇 채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냥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맘으로 하회 마을에서 조선 성리학의 이상을 볼 수도 있고, 운문사에게 불교의 이상과 자연과 인위의 하나됨을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미리 알고 준비한 만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하여 어떤 것도 모르면서 연애를 할 수 있는가? 그냥 이쁘구나 잘생겼구나 정도의 감탄사뿐이다. 그 이상이 되려면 그에 대한 애정으로 그를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 알아갈 때, 그를 사랑하게 되고, 눈이 아닌 맘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운문사를 수차례 더 가게 되었고, 경주를 일년에도 몇 번을 간다. 동화사나 해인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갈 때 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온다.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그 한 권의 책은 경북대 병원 2층에서 누워 천장을 바라 보면 지내던 나에게 큰 기쁨이었고, 이젠 그 기쁨을 삶으로 풀어내며 살고 있다. 그리 많은 이가 찾는 책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맘에 크게 남은 책이란 사실이다.


2013년 6월 4일 유 암브로시오

<여기에 글을 적는다고 누가 보겠는가. 그래서 맘이 편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는 잡초... 보이지 않아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피는 자유가 있다. 누가 보라고 적는 것이 아니라, 내 서재 속 가득한 책 여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