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6일 목요일

Short Texts...2 Tao Te Ching by Lao-tzu Translated by Yu Daechil.

Tao Te Ching by Lao-tzu

Translated by Yu Daechil.

[I have a dream to help you to understand eastern asian philosophy. I have a project to translate asian philosophical texts into English. 2014, 02, 16 Yu DaeChil]

Chapter 1 - On the eternal truth which is always changing

The way that can be considered as the way 
must not be the eternal way.

The name that can be considered as the name 
must not be the eternal Name.

The name, which we can consider as nothing and which has no determinate form, is the eternally real origin or principle of all the universal.
The name, which has determinate form, is the mother of all particular things.

Therefore, 
Free from desire to restrict the truth with the name, you realize the secret.
If caught in the desire to do it, you see only the manifestation or appearance the real truth.

Both the secret and the manifestation arise from the same source, while both have different names. Their only one source is called mystery.

Accordingly, It is mysteries upon mystery.
It is the gateway of the manifold secrets.

Short Texts...1 "The Great Learning" by Confucius 1

"The Great Learning" by Confucius 1 
 
Translated by Yu Ambrosio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The truest and purest way of the great learning is to illustrate illustrious virtue, to be too familiar with the people, and rest in the highest and most excellent virtue.

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인문학 노점상의 철학 이야기 10월 15일

인문학을 육성하자고 이야기를 한다. 간혹 인문학 교실이나 대안공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한 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 인문학이란 것이 필요할까?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대부분의 국민들이 있다. 당장 취업으로 인하여 힘든 청년들이 있다. 이런 청년들의 손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공자와 노자가 들려있지 않은 것은 정말 그들의 무지나 무관심 때문일까? 어쩌면 그들이 부자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는 살아야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인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즉 업자들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당연하다. 업자이기 때문이다. 업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되는가? 성형외과 의사는 성형수술을 하라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 업자니까 그렇다. 개고기집 주인은 개고기를 먹으라고 할 것이고, 분식집 주인은 분식을 먹자도 할 것이다.. 다 이유는 같다. 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데 업자가 아닌 사람들의 입장이 중요하다. 결국 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야하니까 말이다. 어떤 이들은 비싼 식당에 비하여 값이 싸고 금방 먹을 수 있는 동네 분식집에서 식사를 한다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성형수술을 한다.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문학을 하는 철학교수나 역사교수 그리고 문학교수들나 관련 종사자들이 아닌 사람들, 즉 업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필요한가? 

많은 이들이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은 좀 막연하다. 주변에 어떤 이는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앞부분을 읽고 그냥 재미없고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접어버렸다. 그의 손엔 성경책이 있다. 그의 눈에 성경은 거의 모든 인간사 물음의 답이 들어있다. 그러니 윤리학이나 실천철학 혹은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이런 저런 것들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다. 그냥 성경을 읽고 성경의 뜻에 따라 살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는 인문학이 아닌 성경이 필요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이라기 보다는 어떤 명령이 필요하다. 모든 종교를 가진 이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종교인들은 인문학이 필요없다. 그냥 성경이면 그만이다. 그리고 어떤 철학자의 책을 읽어도 신의 뜻을 찾는다. 니체를 읽어도 맑스를 읽어도 신의 뜻을 찾는다. 이들에게 인문학은 필요가 없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 존재의 명령 속에서 모든 답을 구하려 한다. 물론 사람들마다 신의 명령은 다르게 들린다. 어떤 독재자는 자신의 악행 속에서도 신의 뜻을 구할 것이고, 어떤 타락한 목회자도 자신의 역겨운 행위 속에서 신의 뜻을 찾으려 할 것이고, 없으며 자기 최면 속에서 조작을 해 버리기도 할 것이다. 이들에게 인문학, 즉 인간의 힘으로 고민하여 인간의 답을 구하려는 노력은 필요 없다. 신의 명령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는 자신의 이기심을 정당화시키는 신의 명령이 필요하다. 진짜 신의 명령을 구하기 보다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이기심으로 신의 뜻이라고 해석해버리는 사기술로 사람을 속인다. 하여간 이들에게 인문학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철학은 그저 목회자가 되는 과정에 잠시 듣는 과목일 뿐일지 모른다.

돈에 미친 이들도 인문학은 필요 없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책들이 있지만, 그 논리는 맘에 들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도 그리고 공자도 자신의 교육이 취업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회를 개혁하는 논리를 만들고 이를 실천하려는 뜻을 가졌지만, 이것은 새로운 인문학을 만드는 과정이나 그 결실에서 나온 것이다. 인문학은 돈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플라톤은 돈을 벌기 위하여 철학을 하지 않았다. 공자도 그렇다. 철학, 인문학은 돈을 벌기 위하여, 즉 업자가 되기 위하여 하는 학문이 아니다. 요즘으 논술에 나온다니까 고교생들이 고전을 읽는다. 논술에 나오지 않으면 고전을 읽지 않는다. 필요 없으니 말이다. 논술에 나오기 때문에 읽는 고전은 참다운 인문학적 독서가 아니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는 인문학 고전 강독도 그렇다. 면접을 준비하는 것이 인문학은 아니다. 이들은 인문학의 결실을 공부하지만 이것이 인문학은 아니다. 

신에 의지한 사람도 돈에 의지하는 사람도 인문학에 적절한 사람은 아니다. 물론 목사나 신부 그리고 스님도 인문학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명령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고, 취업이나 진학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인간 자신을 들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하면 신을 배신하는 부적절한 행위인가? 웃기다. 인간과 피조물도 신이 창조한 신성한 것이며, 신이 그 좋음을 인정한 위대한 존재들이다. 신의 모상인 인간이 신의 모상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스스로 깨우친다면, 그 가운데 자신의 신성함을 느끼고 알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교도 불교도 무엇인가 종교적이고 사색적인 어떤 것을 얻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인문학 요즘은 인문학을 말하기 힘든 시대다. 

자본주의 시대, 사람들은 돈으로 가치를 평가한다. 신본주의 시대 신으로 세상을 평가하였듯이 말이다. 인문주의 시대, 인간이 인간의 눈으로 자본을 보고 껏을 사용하며 , 인간 스스로의 존재 가운데 신을 볼 때, 인문학은 자생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업자들이 제발 물건 사라고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말이다.

우선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가 높여져야 한다. 가치가 높아지면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는 가운데 인문학을 시작할것이다. 가치가 없고 무시된다면, 사람들은 그 아픔 속에서 생존에 메달리게 되고 결국 인문학을 보기 힘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업자. 인문학자... 그 외부에서 인문학이 어떤 필요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냥 순서 없이 사유대로 따라가며 적어 본다...

BY YU AMBROSIO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대구에 인문학을 위한 작은 노점! 문을 열다!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 라틴어 고전을 우리말로 일반인과 함께!!!


작은 걸음 인문학 노점 문을 열다!

매주 한 페이지 분량의 고전을 발췌해서 번역하면 그것을 두고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생각 있는 분은 연락을 주세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오캄과 스피노자에 등에 이르기까지 고전를 발췌하여 읽을 생각입니다. 제법 많은 글들은 한국어로 처음 번역되는 글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나 목회자분들은 신학사에 나오는 여러 교부들의 글을 한국어로 처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이외 스피노자와 같은 이들의 글도 길지요. 주요 부분을 라틴어에서 직접 번역해서 읽을 생각입니다. 라틴어를 하지 못해도, 제가 직접 번역해서 참가하시는 분은 한국어로 읽을 수 있으며 번역을 하며 고민한 저의 이야기와 함께 풀이도 들을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루터 그리고 칼빈 또 둔스 스코투스의 글들도 라틴어에서 우리말로 발췌 번역하여 읽으며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습니다.
공짜가 아닙니다. 한달 참가비도 있고, 한번씩 오시는 분들은 그때 그때 참가비를 내셔도 좋습니다.
참가비 없이 그냥 친목 모임으로 하면 오다가 안오다가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번역하고 관련 자료 읽고 공부해서 나누려는 저는 자꾸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고 약간의 참가비를 두려고 합니다.
이 모임이 6개월 정도 지속되면 그때마다 작은 제본 책자로 인문학 나눔의 시간을 담으려고 합니다.
고전학, 철학, 신학, 역사, 문학, 종교 그 이외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 가운데 대구 동성로로 찾아오실 수 있는 분들은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처음 시작해서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사람이 1명이라도 모이는 날이 시작하는 날로 하려고 합니다.
영웅 중심으로 누군가의 철학을 칭송하려는 생각 없이
수많은 철학의 고전 속에 담긴 수많은 고민들을 따라서
지금 우리의 삶과 과거 그들의 삶을 고전이란 공간 속에서 함께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연락주세요.

신청은 wissen34@hanmail.net이나 yudaechil@gmail.com으로 하시면 됩니다. 신청인이 1명이라도 모이면 모임의 시간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대구분들이 저의 페친 가운데 많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생각있는 분은 연락을 주세요.

강의는 대구에 직접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저의 블로그를 통하여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저 처럼 노력하고 노력하는 사람의 작은 인문학 노점! 그 시작을 축하해주시고 참여해주세요!

시작은 작지만 그 가치는 절대 작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필요하면 외국의 인문학 동료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조금씩 이루고 있는 저의 작지만 작지 않은 인문학 노점! 많은 응원하고 참여해주세요!

대구 아닌 먼 거리의 분들은 매주가 아니라 한달에 한번이나 격주로 오셔도 좋아요. 전 부디 개점 휴업 상태가 아니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헤리오도루스 (Heliodorus)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 토마스철학학교 소사전


헤리오도루스 (Heliodorus) : 헤리오도루스는 5세기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헤르미아스(Hermias)와 에데시아(Aedesia)라는 두 부부 철학자의 아들이며, 동시에 철학자인 암모니우스의 형제이다. 그의 아버지인 헤르미아스는 헤리오도루스가 어려서 죽는다. 그의 어머니가 홀로 그와 그의 형제를 양육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성장한 그는 이후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로 이주하며, 그곳에서 그는 대표적인 신플라톤주의자인 프로클로스(Proclos)의 아래에서 철학을 익힌다. 아테네 생활 이후 그와 그의 형제 암모니우스는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와 암모니우스는 철학을 가르친다. 이곳에서 그에게 철학을 배운 이 가운데 대표적인 신플라톤주의자인 다마스키우스(Damascius)가 있다.

토마스철학학교 철학 소사전 

에데시아 (그리스말 : Αἰδεσία) 여성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소사전


에데시아 (그리스말 : Αδεσία) : 에데시아는 신플라톤주의 학파에 속하는 여성 철학자이다. 그녀는 5세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살았다. 그녀는 시리아누스(Syrianus)의 친척이며,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내이다. 그녀의 남편인 헤르미아스의 사망 이후 그녀는 그녀의 자녀들인 암모니우스(Ammonius)와 헤리오도루스(Heliodorus)의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녀의 자녀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갔으며, 그녀는 아테데의 철학자들에 의하여 탁월한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 위대한 아테네의 철학자들 가운데는 프로클로스(Proclos)도 있었다. 그녀가 매우 어렸을 때, 그는 시리아누스에 의하여 프로클로스와 약혼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장례식의 조사(弔辭)는 어린 다마스키우스(Damascius)에 의하여 공표되었다.

토마스철학학교 철학 소사전 

2013년 6월 4일 화요일

어느 노점상의 책 이야기 1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과의 대화를 통하여 들은 것은... 다음과 같다.

어느 노점상의 책 이야기 1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과의 대화를 통하여 들은 것은... 다음과 같다.



이재호씨가 적은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이란 책이 있다. 내가 경대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읽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경주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주라고 하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곳... 혹은 박물관과 불국사 정도만을 생각했지만, 경주는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이 책은 삼국유사라는 타임머신을 통하여 지금의 경주를 걸으며 맘은 과거 서라벌을 향하게 만든다. 음... 이 책은 나에게 시간을 여행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후 나의 가족이 함께 한 인문여행의 첫 모티브가 바로 이 책 한권이었다. 

과거 나는 그냥 책으로 고민하고 책 속에서 사고하며 논문으로 세상을 대화하려고 했다. 그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인문학을 몸으로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해인사를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에 맘을 태우고 듣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 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실재로 이 책을 읽고, 나는 아들과 경주로 가서 불국사, 첨성대 등을 다녔다. 첨성대를 보는데... 갑자기 지금 21세기... 그저 기념품 같은 석조물이 아닌 신라 시대 살아있는 첨성대를 지나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아들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젠 느낀다.

삼국유사의 장면을 찾아 경주를 돌아다니는 이 책의 방식에 따라서 경주를 다닐 시간은 아직 없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그냥 숲을 찾아서 몸을 쉬는 휴식도 좋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한 곳에 작지만 이쁜 과거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타임머신들이 있다. 예를 들어, 동화사와 운문사 그리고 하회마을에 그냥 눈으로 보기 위해 간다면, 그리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맘으로 동화사를 미리 알아부고 운문사와 하회마을을 미리 알아보고 간다면, 눈으로 보는 과거의 건물 몇 채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냥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맘으로 하회 마을에서 조선 성리학의 이상을 볼 수도 있고, 운문사에게 불교의 이상과 자연과 인위의 하나됨을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미리 알고 준비한 만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하여 어떤 것도 모르면서 연애를 할 수 있는가? 그냥 이쁘구나 잘생겼구나 정도의 감탄사뿐이다. 그 이상이 되려면 그에 대한 애정으로 그를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 알아갈 때, 그를 사랑하게 되고, 눈이 아닌 맘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운문사를 수차례 더 가게 되었고, 경주를 일년에도 몇 번을 간다. 동화사나 해인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갈 때 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온다.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그 한 권의 책은 경북대 병원 2층에서 누워 천장을 바라 보면 지내던 나에게 큰 기쁨이었고, 이젠 그 기쁨을 삶으로 풀어내며 살고 있다. 그리 많은 이가 찾는 책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맘에 크게 남은 책이란 사실이다.


2013년 6월 4일 유 암브로시오

<여기에 글을 적는다고 누가 보겠는가. 그래서 맘이 편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는 잡초... 보이지 않아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피는 자유가 있다. 누가 보라고 적는 것이 아니라, 내 서재 속 가득한 책 여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