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험적 (A posteriori) : 17세기 이후 인식 이론에서 ‘후험적’(a posteriori)이란 용어는 매우 유명한 용어이다. ‘선험적’이란 것은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은 증거 혹은 명확성에 근거한 지식 혹은 정당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후험적 진리는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은 증거로부터 분리되어 알려 질 수 없는 진리이다. 또 후험적 개념 역시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은 증거로부터 분리되어 얻어질 수 없는 개념이다. 후험적 지식은 선험적 지식(a priori knowledge)과 비교된다. 선험적 지식은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은 증거를 요청하지 않는 지식이다. 즉 선험적 지식은 비-경험적 지식(non-empirical knowledge)이다. 이러한 선험적 지식과 구분하여 후험적 지식은 경험적이며(empirical), 풀어 쓰자면 경험 의존적 지식(experience-based knowledge)이다. 후험적 진리의 일반적 사례는 실험과 관찰에 의존하는 자연 과학과 일반적인 지각 경험의 진리들이다. 반면 선험적 진리의 일반적 사례는 논리학과 수학의 진리들이다. 칸트(I.Kant)의 『순수이성비판』(1781/1787)에 따르면 후험적 지식과 선험적 지식 사이 구별은 경험 지식과 비경험적 지식 사이의 차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중세철학에 있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 존재 증명의 경우는 선천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반면 안셀무스(Anselmus)의 신 존재 증명은 선험적이다. 왜냐하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의 참됨을 인정하며,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들은 원인을 가지며, 원인 없이 있지 않다. 그 자신의 원인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그 원인에 선행하는 원인을 따라서 추적하면 하나의 원인, 즉 신을 가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증명은 경험되어지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어떤 생득적인 것 혹은 선험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캄(Ockham)은 『논리학대전』 3-2에서 결론에 절대적으로 선행하는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과 결론에 선행하지 않지만 인간에게 더욱 더 잘 인식되는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선험적이며, propter quid의 방식이라하고, 후자는 후험적이며 quia의 방식이라 한다. 오캄의 글을 읽어보자. “본질에 의한 증명은 그것의 전제들이 단순히 결론에 선행하는 논증이란 것을 알아야 했고, 그것들은 선험적(a priori) 혹은 본질에 의한 (propter quid) 증명이라 불린다.”(Propter quod oportet scire quod quaedam est demonstratio cuius praemissae sunt simpliciter priores conclusione, et illa vocatur demonstratio a priori sive propter quid.) 또, “그것의 전제들이 단순히 결론에 선행하는 것이 아닌 증명이 있고, 이것은 삼단논법을 하는 이에게 이러한 방식에서 더 잘 알려진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삼단논쟁을 하는 이는 결론의 지식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러한 논증은 이유에 의한(quia) 증명 혹은 후천적 증명이라고 한다.”(Quaedam est demonstratio cuius praemissae non sunt simpliciter priores conclusione, sunt tamen notiores sic syllogizanti, per quas devenit sic syllogizans in notitiam conclusionis, et talis demonstratio vocatur demonstratio quia sive a posteriori.) 오캄의 문헌에서처럼 후험적을 의미하는 a posteriori은 이미 칸트 이전에 발견된다. 그러나 현재 많은 경우는 칸트를 통하여 많이 알려진 고민이다. (유대칠 씀) -> 선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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