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그리스어
고전 그리스어(Classical Greek)은 오랜 과거 그리스어다. 비록 다른 언어의 역사에 비하여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가 적다고 하지만, 고전 그리스어는 분명히 현대 그리스어와는 다르다. 그리고 고전 그리스어는 실생활에 사용되는 현대 영어, 현대 독일어나 현대 불어와 같은 활어(活語)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그리스어는 사어(死語)다. 그러나 무의미하거나 어떤 힘도 가지지 않은 그러한 사어는 아니다. 여전히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같은 인류의 지혜가 담긴 고전의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또 고전 그리스어는 서양의 고전어인 라틴어와 그 이외 많은 서양의 언어에 어휘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ἱστορία(연구, 이야기)에서 현대 영어의 history와 현대 독일어인 historie가 나왔으며, 라틴어 historia도 다르지 않다. 그 이외에 ‘수사학’(修辭學)을 의미하는 고전 그리스어 ῥητορική에서 영어 rhetoric이 나왔으며, 그 이외 이러한 경우는 매우 허다하다.
이와 같이 언어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고전 그리스어를 학습하는 이유는 고전어로 기록된 고전을 읽고 연구하기 위해서다. 한문(漢文)을 익힘으로 공자와 이황 등의 동아시아 사유를 연구할 수 있으며, 라틴어를 익힘으로 로마와 중세 유럽의 사유를 익힐 수 있다. 또 고전 그리스어를 익힘으로 그리스의 고전과 그 이외 성서학 등에 이르는 넓은 분야에 연구가 가능하다.
그리스어 간략 소개
그리스어는 BC 14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34세기 동안 사용된 인도유럽어다. 고대 그리스어는 다시 미케네 그리스어(BC 14~12세기)와 고대 고전 그리스어(BC 8~4세기)로 나눌 수 있다. 미케네 그리스어는 선형 B 문자(Minoan linear script B)라고 부르는 음절문자를 쓴 것이 특징이며, 고전 그리스어는 알파벳(자모문자)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리스어 가운데 선형 B 문자는 기원전 1400년경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발견한 영국의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Sir Arthur Evans)는 1900년부터 크레타의 크로소스 유적을 발굴하고 있었다. 출토된 점토판 가운데 문자가 새겨진 것이 있었으며, 그 문자의 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것이 선형 A 문자와 선형 B 문자이다. 이 두 문자는 모두 기존의 그리스어의 문자와는 사뭇 다른 현대였으며, 당시 크레타 사람들의 말인 미노스어의 문자일 것으로 추종하였으나, 결국 이를 해독하지 못하고 에반스는 1941년에 사망한다. 그 후 11년이 지난 1952년 선형 B 문자는 건축가 마이클 벤추리스(Michael Ventris)가 해독된다. 해독의 결과 선형 B 문자는 그리스어였다.
선형 B 문자 이외 또 다른 고대 고전 그리스어의 문자인 그리스 알파벳는 문자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그리스 알파벳에 있어서 놀라운 진보는 모음을 나타내는 다섯 글자이다. 그리스 알파벳은 라틴어 문자와 현대 영어, 독일어, 불어, 네덜란드어 등의 바탕이 된다. 이 다음 단계는 코이네 방언의 단계다. 이 방언은 헬레니즘 그리스어(BC 4세기~AD 4세기)와 비잔틴 단계(AD 5~15세기)로 이어진다. 헬레니즘 그리스어는 파피루스 등에 기록물이 남아있으며, 비잔틴 그리스어는 필사본으로 접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 고전 그리스어, 코이네 그리스어로 이어진 그리스어는 15세기에 이르러 근대 그리스어로 자리 잡는다.
고전 그리스어는 몇 가지 방언을 가진다. 이오니아와 아티카 지방에서 쓰던 그리스어가 우세 하였으나, 그 이외에도 다양한 방언들이 있었다. 서부 방언, 아이올리스 방언(Aeolic), 이오니아 아티카 방언, 아르카디아키프로스 방언 등이 있었다. BC 8세기 도리아인들의 그리스 침공 이후 여러 방언 사이에 섞이며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미 각각의 방언들은 각각의 작가들에 의하여 나름 활용되고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이올리스 방언과 이오니아 방언(Ionic)의 특징을 가진다. 합창곡의 가사는 도리아 방언(Doric)으로 되어 있다. 헤로도토스와 히포크라테스는 이오니아 방언으로 사용했다. 투키디데스와 플라톤은 아티카 방언(Attic)으로 글을 썼다.
이오니아 지방은 과거로부터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며, 아티카 지방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철학이 발달한 지역이며, 동시에 문화, 경제, 정치의 중심지이다. 기원전 5세기부터 아티카 방언은 표준어가 되어간다. 이 방언은 플라톤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아티카 지방인 아테네의 사람들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아티카 출신 사람이 아닌 이들이 사용하는 아티카 방언이 등장하게 된다. 즉, 아티카 방언의 순수성이 상실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도 아테네 출신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티카 방언은 이오니아 방언과 그 이외 다른 방언과 혼합된 새로운 방언이 등장하게 된다. 그것이 신약 성서에 사용되는 코이네(Koine, 공통어) 방언이다.
BC 4세기에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을 건설하면서 그리스어의 구어체가 상당한 통일성을 갖게 되었는데, 이 구어를 코이네 또는 헬레니즘 그리스어라 부른다. 코이네 방언은 ‘민중 그리스어’란 말이다. 이 방언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제국 표준어가 되어 제국의 각지로 펴져간다. 또 이 코이네 방언은 지금의 현대 그리스어로 이어진다. 그리스어는 기원전 2 세기 이후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세력 아래에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인 면에서 그리스는 로마를 능가했다. 그렇기에 라틴어가 아닌 코이네 그리스어가 국제어가 되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신약 성서가 그것으로 쓰이고,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도 쓰인다. 코이네 방언은 기본적으로 아티카 방언에서 발달 한 것이다. 그리고 아티카 방언의 산문은 이오니아 방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티카 방언을 익히면, 쉽게 코이네 방언도 익힐 수 있으며, 이오니아 방언도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고전 그리스어 문법서는 아티카 방언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리스어로 된 고전 보다는 신약 성서를 익히는 신구교의 신학생을 위한 교재로 그리스어 문법서가 나왔기에 대부분이 코이네 방언에 기초하고 있다. 코이네는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의 아티카 방언과 달랐다. 당시 아티카 방언을 강조하던 아티카학파는 이를 '순수하지 않은'언어로 간주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저술은 아티카 방언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코이네가 발전되는 동안에도 비잔틴 그리스어라고 부르는 문어체(文語體)에선 여전히 아티카 방언의 전통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리스어 문법은 단순화가 이루어졌지만 오랜 세월을 감안하면, 여전히 상당 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는 문법적으로 단수, 양수, 복수 등 세 가지 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코이네에 이르러 단수와 복수만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참고로 현대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불어 등도 단수와 복수만을 가진다. 그러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등의 인도유럽어족은 단수, 양수, 복수를 가진다. 하지만 남성, 여성, 중성이란 고전 그리스어의 구분은 여전하다. 또 많은 인도유럽어족에서 발견되는 특징인 형용사를 명사의 성, 수, 격과 일치하는 것도 동일하다. 미케네 그리스어는 주격(主格), 목적격(目的格), 소유격(所有格), 여격(與格), 처소격(處所格), 도구격(悼懼格), 호격(呼格), 탈격(奪格)의 어형을 가졌지만, 이후 처소격과 도구격은 사라진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와 같은 고전어엔 유지되며, 라틴어에서도 처소격과 도구격은 보이지 않는다.
<유대칠(토마스철학학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