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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2일 화요일

페트루스 올리비(Peter Olivi)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생각


페트루스 올리비(Peter Olivi)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생각

유대칠 옮김
(토마스 철학 학교)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그리스도교 철학자다그의 논의는 상당 부분 그리스도교 신앙의 것과 조화되기 힘들다이러한 상황에서 중세 많은 철학자들은 나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저마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입장들은 그들의 철학에 반영되었다-그리스도교 철학자이지만아리스토텔레스를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으며무시하기 힘든 철학자였다어떤 의미에서 인간 지성의 최고점이란 칭송을 받기도 했다오캄둔스 스코투스토마스 아퀴나스 등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저작에 대한 주해를 남겼으며그의 철학적 논의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였다그러나 스콜라 철학자들은 그의 비-그리스도교 철학자라는 것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올리비는 신앙의 문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드러낸다물론 올리비의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그는 여전히 그를 인용하고 있으며그의 논변을 두고 고민한다하지만 신앙에 대한 입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α> Catherine König-Pralong "Olivi et le formalisme ontologique Lectures dAristote dAverroès et critique dAlbert, " in Pierre de Jean Olivi - Philosophe et théologien, ed. Catherine König-Pralong, Olivier Ribordy, Tiziana Suarez-Nani, (Walter de Gruyter, 2010) 135-168. 161.

β> Peter John Olivi. Quastiones in secundum librum Sententiarum, ed. B. Jansen (Quaracchi: Ad Claras Aquas, 1922) v. 3, Quaestio XVI, 342.

α> Aristoteles etiam non hic videtur ibi sentire, licet mihi non sit cura quid hic vel alibi senserit; cuius enim auctoritas et cuiuslibet infidelis et idolatrae mihi est nulla, et maximae in iis quae sunt fidei christianae aut multum ei propinquam.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에 관하여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한 듯 여겨지지 않는다비록 나에게 그가 이것 혹은 다른 것에 관하여 무엇을 생각하였는지를 고려의 대상이 아니지만그의 이교적이고 우상화된(idolatae) 모습과 그의 권위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특히나 이 문제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속하는 문제 혹은 그것에 대하여 다루는 것에서 말이다.
β> decimum dicendum quod christiano viro sola scriptura sacra et fides catholica debet esse in robor et culmen auctoritatis; et ideo posito quod omnes pagani falso dicti philosophi contrarium senserint aut aliqui eorum, non est mihi cura.
열 번째 논의에 대하여 그리스도교인에게 오직 성서와 보편적 신앙만이 권위의 핵심이고 최상의 상태라고 말 되어야 한다그러므로 비록 철학자라 불리는 이교도들이 반대되는 것을 생각하거나 혹은 그 가운데 일부를 생각해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번역문의 무단 인용은 금합니다. 혹시나 인용시 꼭 토마스 철학 학교 블로그 혹은 Thomas Philosophia Schola Blog로 부터의 인용이란 출처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둔스 스코투스의 면도날- 후기 중세 철학자들에게 필요성과 철학방법론의 문제


스코투스의 면도날!
- 후기 중세 철학자들에게 필요성과 철학 방법론의 문제
 
유대칠 생각하고 정리함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을 함에 있어서 필요 이상의 것을 가정하고, 그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흔히 윌리엄 오캄(William Ockham)의 면도날 혹은 면도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그러한 면도날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아래의 글은 The Extremely Subtle Questions on the Books of Metaphysics of Aristotle, Book VIII, Q.1, n.22에서 발췌되어 번역되었다.
 
Aliter dicitur ad quaestionem quod paucitas semper est ponenda quando per ipsam salvantur apparentia . . . Et ideo positio plurium semper debet dicere necessitatem manifestam propter quam ponantur tot; nihil autem apparet in accidentibus propter quod debeant poni composita ex duabus partibus essentialibus, communiter loquendo . . .Ideo communiter negatur talis compositio.
다른 방식으로 [우유는 단순한 것인가 혹은 복합된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항상 그 자체에 의해 구제될 수 있는 현상이 있을 때 몇 가지만을 취해야한다고 답해야 한다... 그러므로 더 많은 것이 가정될 때, 우리는 다수의 것이 가정되기 때문에 항상 명백하게 필요한 것만을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유가 두 가지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합성되어질 분명한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그러한 합성은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오캄의 면도날 혹은 면도칼이라고 하는 것은 오캄만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다. 방식이 다를 뿐, 중세의 많은 철학자들의 각자 나름의 자리에서 필요 이상의 논리적 산물을 양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철학자의 태도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그의 신학대전1, q.2, q.3에서 나름의 면도날을 보이고 있다. “적은 논리를 통해 완성되어질 수 있는 것이 다수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는다.”(quod potest compleri per pauciora principia, non fit per plura) 그리고 오캄과 동시대 혹은 그와 시대적으로 서로 교집합을 형성하는 많은 철학자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면도날은 오캄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필요 이상의 것을 제거하며 논리를 구성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태도이다. 그런데 왜 철학사는 이를 오캄에게 한정하게 되었는가? 어쩌면 그가 유명론자 혹은 개념론의 길을 가기에 실재론자들과 구별하며, 그가 보편자를 면도날로 잘랐기에, 그의 면도날을 중세 철학사의 면도날의 대표격으로 높인 것일까? 그러나 분명 위와 같이 스코투스 역시 면도날을 주장했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면도날을 주장했다. 이들은 실재론자들이다.
 
면도날과 관련된 후기 중세 철학자들의 필요성(neccesaritas)과 관련된 진술들은 다음과 같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필요성과 철학의 방법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적은 원리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은 다수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는다.”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 q.2, a.3.
 
둔스 스코투스는 필요성과 철학의 방법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다수성(pluralitas)은 필요성(necessitas)이 없을 때 가정되지 않아야 한다.”Duns Scotus, I Ordinatio, d.3, p.3, q.1 ( ed. Balic 3, 224 ).
다수(plura)는 필요성 없이(sine necessitate) 가정되지 않는다.”Duns Scotus, De primo principio 3, 16.
 
윌리엄 오캄은 필요성과 철학의 방법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철학자는... 모든 드러난 것이 더 소수의 것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을 때, 다수를 가정하지 않는 명제들을 가정한다.” William Ockham, Expositio in libros physicorum aristotelis, 3, c.10 (OPh.4, 525).
필요성 없이 그리고 근거 없이 다수성이 가정되기에 이는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William Ockham, Summa logicae 1, 57 (OPh.1, 185).
심적 명사 가운데 가정되는 그러한 다수성은 그리 큰 필요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William Ockham, Summa logicae 1, 11 (OPh.1, 11).
다수성은 필요성 없이(sine necessitate) 가정되지 않는다.”William Ockham, Expositio in libros physicorum aristotelis, 1, c.11, §9 (OPh.4, 118).
 
월터 채톤(Walter Chatton)은 필요성과 철학의 방법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다수성은 필요성 없이 가정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Walter Chatton, I Lectura, prol. q.2.